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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연구실/미디어 속 요리

「리틀포레스트 여름」 감주와 막걸리

by 호랑이 연구원 2019.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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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마신 감주와 둘이 마신 막걸리 

; 영화에서의 감주

축축한 여름 한가운데서 논일을 하던 이치코는 상쾌한 무언가를 찾는다. 생각해낸 상쾌한 무언가는 감주. 만드는 과정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지만 밭일 후 마시는 감주에 감탄한다. 한 잔 마신 후 바로 한 잔 더 마신다.

너무 많이 만들어 남은 감주는 발효되어 막걸리가 됐다. 늦은 저녁 이치코는 유타에게 전화를 건다. 유타에게는 이치코의 절친인 키코에게 들킬 수 있으니 걸어오라는 당부를 건넨다. 늦은 밤 친구에게 들킬 수도 있으니 몰래 오라는 이치코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관계도 '발효'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치코 집에 전구가 나가 전구를 갈아주는 유타를 보며 낭만적인 말을 하는 키 큰 남자에게 약한 것 같다는 독백도 나오니 그 둘의 관계에 대해 확신했지만,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유타와 키코가 부부가 된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가 시작되는 여름부터 영화가 끝나는 봄까지, 네 계절이 지날동안 그들의 관계는 전혀 진전되지 않았다. 

이치코가 티 나지 않게 유타를 바라보기만 하는 걸 보면, 감주가 막걸리가 될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리던 이치코의 모습 그대로다. 음식과 사랑을 대하는 방식이 동일하게 느껴진다. 급하지 않게, 차분히, 음식이, 사랑이, 어떤 상태에 왔는지, 지긋이 바라보고, 제 맛을 낼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주는, 그런 방식.

 

감주와 식혜, 그리고 할머니

; 나에게 있어서의 감주

감주와 식혜는 생김새와 맛이 같을 수 있지만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식혜는 엿기름으로 삭혀서 만들고, 식혜를 오래 고으면 엿이 된다. 감주는 죽이나 쌀밥을 누룩으로 발효시켜 만든다. 여기서 조금 더 발효를 진행하면 알코올이 생겨 막걸리가 된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먹어왔던 것이 식혜였는지 감주였는지 알 수 없다. 할머니께서 직접 만드시지는 않고 시장에서 식혜를 사 오셨기 때문에 만드는 방식에 엿기름이 들어갔는지 누룩이 들어갔는지 알 수 없기도 하지만 감주와 식혜라는 단어를 번갈아 사용하셨기 때문에 나는 두 단어가 같은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맛있었다. 언제나 시원하게 먹을 수 있도록 냉장고에 넣어두셨는데, 살얼음이 얼 수 있도록 김치냉장고에 넣어둔 것은 더 맛있었다. 지금은 할머니와 떨어져 살고 있지만, 식혜를 마시면 할머니가 떠오른다. 음식을 통해 인물이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그 중 하나다.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할머니가 건네주신 식혜를 마셨기 때문에 잊히지 않는다. 너무나도 깊숙한 무의식 저너머에 있는 좋은 기억이다. 할머니와 직접 시장을 다니기도 했는데 나를 이뻐해주시기도 하셨지만 맛있는 음식을 직접 해주시기도 하고, 시장에 갈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것들을 사주셨다. 손주에게 있어 감주는 할머니의 사랑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영화 속 감주 레시피

1. 죽에 누룩을 섞는다.

2. 상온에 하루동안 방치한다.

3. 하루가 지난 후 발효가 되도록 이스트를 넣는다. 

4. 건더기를 걸러 맑은 감주만 옮겨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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